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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싸이트 Enter the Prayer Book
우리 말로 남기실 분은 두번 클릭하셔야 합니다. 번거로움이 있는 것 양해 바랍니다.



*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 예배소서 6::18 -
* Pray in the Spirit on all occasions with all kind of prayers and requests. With this in mind, be alert and always keep on praying for all the saints.   - Ephesians 6:18 -

" Lord, lay some soul upon my heart,
And love that soul through me;
And may I nobly do my part
To win that soul for Thee." - Tucker

" 주님, 한 영혼을 제 가슴에 품게하사
저를 통하여 그 영혼을 사랑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나도 당신께
그 영혼을 인도하는데 쓰여지게 하소서."

* 하나님, 저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오니 제가 넘어지지 않도록 항상 붙들어 주시고 하나님만을 예배하며 섬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소서


Lord Jesus, please help us to guard our hearts against pride, and teach us to be humble. - DCE

주 예수여, 교만하지 않게 우리들의 마음을 지켜주시고 겸손함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Self-centeredness brings misery,
A proud heart brings much pain;
But those with true humility
Have lasting peace to gain. - Sper

자기 중심의 삶을 살면 비참해집니다.
교만한 마음은 많은 고통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진정 겸손한 사람에게는
지속적인 평화가 있습니다.

No garment is more becoming to a child of God than the cloak of humility.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겸손의 옷보다 더 잘 어울리는 옷이 없다.

 

기도응답 한 편




**남을 위한 기도를 중보기도라 말 할 수 없고 - 백성기

기도를 쉬지 않는 죄를 짓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도 있읍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서 제목을 정하여 기도드려야지요

중보기도라는 용어 사용에 대해서 장로교(합동) 총회에서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음을 알려 드림니다.

부전교회 원로목사, 총회 증경총회장이신 한병기목사님께서 강조하여 총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총신대학교 개교 100 주년 기념예배시 말씀하신 내용중 일부가 중보기도 용어 사용 불가하시다고 말씀하심.

본 교단 총회 2000 년 9 월 제 85 회 총회에서 신학부가 연구조사보고한 내용이 아래와 같다.

총회 보고서 신학부 보고 제 397 쪽 제목 타인을 위한 기도를 중보자의 기도라 할 수 있는냐

- 아 래 -

1. 사건개요
타인을 위한 기도가 중보기도사역으로 보고 교회안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제 84회 총회에 헌의된 바가 있어 연구하게된 것이다.

2. 중보의 언어학적 배경 및 용어
1). 언어학적 배경( 생략)
2). 중보라는 용어의 용례(생략)
3. 중보란 무엇인가? (요약)
요 14:6 에 보면 "내가 곧 길이요,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한 말씀과 딤전 2:5 에 "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였다. 이로 보건데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누구도 중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개략)
4. 중보기도란 무엇인가?(요약) 딤전 2:1-2 에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는 기도의 네가지 종류인데 그 중 세번째 도고라는 용어는 별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이 도고(intercession prayer)는 글자그대로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입니다. (중략) 한국교계에서 중보기도라 하여 많은 교회들이 사용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 맺는 말
<조직신학 기독론(p234)> 에 보면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시킬 중보의 자격은 성경에 명시되어 잇다. 중보의 자격은
1) 그는 반드시 사람이실 것이라 하였다. 그리스도가 천사의 성질을 취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인성을 취해 입으신 이유는 그가 우리 인류를 구속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2) 그는 반드시 무죄하실 것이라 하였다.
3) 그는 반드시 신적 인격이실 것이다.

위의 내용은 예수그리스도를 지적한 것이요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거나 개인의 기도를 부탁받아 하는 기도를 중보기도라 말 할 수 없고 다만 " 합심기도", "개인기도", "부탁기도"라는 단어를 사용함이 타당하다 보아야 겠다.

중보기도는 예수님의 대제사장 기도에만 사용되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되어진다. 소위 요즈음 말하는 타인을 위한 기도를 중보기도라 함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중보사역을 약화시킬 우려가 없지 않다. 그러므로 타인을 위한 기도를 이웃을 위한 (남을 위한)기도라 함이 합당하다고 본다.

이상 85회 총회에 보고한 내용 발취한 것임

헌법 대소요리문답, 웨스트민스트 신도게요에도 중보사역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오고, 기도에 중보기도 란 없음.

* '중보기도'란 용어에 대해서 어떤 의견들을 가지고 계십니까? 제 생각은 My page란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 보시고 의견도 기도란에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 에베소서 4:30 [ 성경읽기 ]

물론 성도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이지만 오직 은혜의 성령이라는 통로를 통해 온 것입니다. 다른 모든 축복들도 이처럼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옵니다. 그 동일한 성령의 성화 작업을 떠나서는 우리 안에서 거룩한 생각이라든가 경건한 예배, 또는 인자한 행동과 같은 선한 것들이 전혀 나올 수 없습니다. 설사 선한 씨앗이 우리 안에 심겨진다 해도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그의 선하신 뜻대로 뜻하고 행할 수 있도록 돕지 않으시면 그 씨앗은 그대로 잠자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위해 말하고 싶습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의 혀를 건드리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예수님에 대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고 싶습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을 위해 중보 기도해 주시지 않으면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겠습니까! 죄를 정복하고 싶습니까? 최고의 영성을 갖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천사들처럼 주님 일에 열심 있고 충성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이 모든 것이 다 불가능합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오 포도나무 가지여, 여러분은 포도나무 수액을 떠나서는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 하나님의 자녀여, 여러분은 하나님이 그의 영을 통해 주신 그 생명이 없다면 사실 자기 안에 생명도 갖고 있지 않은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지음으로써 성령을 근심시키거나 화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우리 영혼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소멸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성령께 주도권을 드려 모든 것을 다 제안하게 해드리고 그가 인도하실 때는 즉시 따를 준비를 하고 있으십시오. 성령이 정말 그렇게 능력 많으신 분이라면 이제부터는 성령 없이는 아무것도 시도하려 하지 맙시다. 성령의 축복을 간청하지 않고는 어떤 프로젝트도 시작하지 말며, 어떤 활동도 수행하지 말고, 어떤 업무도 결론짓지 맙시다. 성령을 떠나서는 우리가 전적으로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드려야 할 마땅한 경의를 표한 후, 이렇게 기도하면서 오직 성령만 의지하도록 합시다. “성령님, 성령께서 들어오실 수 있도록 제 온몸과 마음을 활짝 열어 주신 다음, 제 안에 들어오시어 그 자유로운 영으로 저를 붙들어 주소서.”




**기도하는 시간이 더욱 길어졌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나는 요즘 너무 바빠서 기도하는 시간이 더욱 길어졌다'는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일이 많으니까 그 일들을 위해 하나씩 기도해야만 하므로 더욱 기도하는 시간이 길어졌다는말일것입니다. 당연한 이치인데도 이상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와 루터의 기도에 대한 개념 차이일 것입니다.
'가을에 숲속에서 떨어지는 잎들의 기도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어느 시인은 잎들에게서도 기도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을에는 나도 기도하게 하소서'라는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영혼의 촉수를 밝혀 하나님께서 더욱 청명히 우리를 보실 수 있는 영혼의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영혼의 촉수보다는 내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을 종종 봅니다. 기도는 대상이 있어야 하며 그 대상은 주인이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 간구하는 자는 종이어야 합니다. 이 가을에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용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나는 종이 되고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그리고 은혜를 묻는 기도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잠 못 이루는 자를 위하여/ 이용삼

Martin Ruther testified, " The more I was busy, the more I pray." Being charged more he needed to pray for more people then he had more time to pray. That is very natural but do we as he did? Don't we use praying for ourselves? Praying demands the opposites that we're service men, God is the LORD. Let's don't use God for anything for ourselves!
Father, let us pray for You, only You!